
정부보다 주민이 먼저 나섰다. 흔치 않은 유치전 이야기다.
지자체 유치 경쟁이라고 하면 보통 시청이 앞장서고 주민은 뒤따르는 그림을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과천 경마장 시흥 유치전은 순서가 거꾸로였다. 게다가 알고 보면 시흥 혼자만의 싸움도 아니다. 그 과정을 하나씩 따라가봤다.
시작은 정부가 아니라 주민이었다
5월 10일, 시흥 은계·목감·장현 택지지구 주민 연합(줄여서 ‘은목장’)이 먼저 유치를 제안하면서 시민 주도 추진위원회가 발족했다.
시민들이 먼저 움직였다는 점도 눈에 띄지만, 더 눈여겨볼 건 이들이 내놓은 제안 방식이다.
시흥시가 내놓은 카드: “마사회까지 챙기겠다”
보통 유치전은 “우리 지역으로 오세요”에서 끝나는데, 시흥 추진위는 한 단계 더 나갔다. 이전 과정에서 마사회가 떠안을 대규모 손실 우려, 임직원 약 3,000명의 주거 문제, 일방적 결정에 따른 갈등 가능성까지 짚었다.
그러면서 “마사회 수익 보전, 임직원 삶 보호, 정부 정책 완수, 이 세 가지를 동시에 풀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시흥”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단순 부지 제공이 아니라 이전으로 생길 문제까지 같이 풀겠다는 접근인데, 개인적으로는 다른 지자체보다 준비가 한 수 앞서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시청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임병택 시흥시장은 시흥시정연구원까지 참여하는 전담 TF를 직접 꾸렸다. 6월에는 시민 1만 5천 명이 참여한 유치 동의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7월엔 문정복 국회의원, 임 시장 등 민·관·정이 함께 한국마사회를 방문해 서명부를 직접 전달했다. 시민 동의를 숫자로 증명해서 들고 간 셈이다.
사실은 시흥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시흥이 거의 단독 후보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경기도 안에서만 여덟 개 지자체가 뛰어든 전면전이다. 경기 북부에서는 포천, 동두천, 파주, 양주, 고양이, 남부에서는 화성, 안산, 시흥이 나섰고 최근엔 이천까지 마사회에 직접 유치 필요성을 설명하며 가세했다.
지자체마다 내세우는 카드도 다르다. 화성은 간척지인 화옹지구 4공구를 후보지로 검토하면서 마사회 소유 부지와 기존 말산업 기반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고양은 마사회가 이미 운영 중인 원당 종마목장(서삼릉 인근)을 앞세워 대곡역세권과 경제자유구역 후보지 인근을 검토하고 있다. 안산은 단원구 대부동 일대를 유력 후보지로 정하고 타당성 조사에 들어갔고, 동두천은 미군 반환 공여지인 ‘짐볼스훈련장’을 대체 용지로 제시하며 공식 유치를 선언했다. 파주는 지역 국회의원들이 SNS로 유치를 주장하는 수준이지만, 양주는 6개 분과(유치총괄반·전략지원반·대외협력반·홍보지원반·기획법률반 등)로 구성된 TF까지 꾸리며 가장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곳 중 하나로 꼽힌다.
왜 다들 이렇게 눈독 들이나
이 정도로 지자체들이 몰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1989년 조성된 과천 경마장은 축구장 160개에 맞먹는 약 115만㎡ 규모에, 7만 7천 명을 수용하는 경기장 2개를 갖추고 있다. 연간 방문객만 420만 명에 달한다.
과천시가 경마장을 통해 거둬들이는 지방세만 연간 약 485억 원, 과천시 본예산의 10.84%에 해당하는 규모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이만한 규모의 시설과 세수원이 통째로 굴러들어오는 셈이니, 유치 경쟁이 과열되는 게 당연해 보인다.
시흥의 강점을 경쟁자들과 비교하면

경쟁 후보지 중에서도 양주는 스펙만 보면 만만치 않다. 후보지로 내세운 광적면 광석리 ‘광석지구’는 약 117만㎡(35만 평)로 현재 경마장과 면적이 비슷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토지 보상까지 이미 끝내놔서 사업 속도가 빠르다는 게 강점이다. 서양주IC와 국지도 39호선 확장, 서울~양주 고속도로 같은 광역 교통망 계획도 함께 내세운다.
화성은 서해안고속도로와 평택-시흥고속도로, 서해선 복선전철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신안산선 화성시청역 연장까지 중앙정부에 건의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런 경쟁자들 사이에서 시흥이 들고나온 카드는 ‘부지 스펙’보다는 ‘마사회까지 고려한 현실적 대안’이라는 접근 방식 자체다. 다른 지자체가 대부분 교통망이나 부지 면적 같은 하드웨어를 내세우는 것과 달리, 시흥은 이전 과정에서 생길 갈등과 임직원 문제까지 미리 짚었다는 점이 차별점으로 보인다.
8월 발표 이후 다시 불붙은 유치전
8월 13일 정부가 ‘8·13 주택공급 대책’에 경마장 이전 관련 내용을 포함시키자, 시흥시는 8월 28일 TF 회의를 다시 열었다. 부지 확보, 교통 접근성, 도시계획, 인허가, 주변 지역과의 연계성까지 하나씩 다시 점검했다.
정부가 9월까지 이전 대상지를 선정하겠다고 밝힌 상태라, 사실상 유치전의 막바지 국면에 들어선 셈이다.
그래서 지금은 어디까지 왔나
다만 아직 정부나 마사회가 시흥시를 공식 확정한 건 아니다. “관계기관 검토와 절차를 거쳐 확정될 전망”이라는 단서가 매번 붙어 있다. 양주·화성·고양·안산 등 다른 후보 지자체도 여전히 각자의 강점을 내세우며 유치전에 나서 있는 상태라, 시흥이 유력하다고 단정하기엔 아직 이르다.
착공 목표 시점도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온다. 2029년 12월을 언급하는 보도가 있는가 하면, 1·29 대책 발표 기준 ‘2030년 착공’을 언급한 보도도 있다. 이 부분은 아직 확정된 수치가 아니니 그대로 믿기보다는 참고 정도로만 보는 게 안전할 것 같다.
정리하면
시흥시는 주민 제안 → 서명운동 → 마사회 방문 → TF 재가동 순으로 준비를 착실히 쌓아온 후보지이고, 마사회 입장까지 고려한 제안이라는 점이 차별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경기도 안에서만 여덟 개 지자체가 뛰어든 전면전인 만큼, 양주의 빠른 사업 속도나 화성·고양의 교통·산업 기반 같은 경쟁자들의 강점도 만만치 않다. 최종 결정은 정부와 마사회 몫이고, 9월까지 선정한다는 방침대로면 결과가 곧 나올 시점이다.
오늘 바로 할 일 한 가지: 시흥시청 공식 홈페이지나 SNS에서 ‘경마장 유치 추진단’ 관련 최신 소식을 한 번 검색해보자. 선정 시점이 임박한 만큼, 뉴스보다 시청 공지가 더 빠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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