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경마장 이전에 노조위원장 5명이 삭발까지 한 이유

노조위원장 다섯 명이 한자리에서 머리를 밀었다. 아파트 몇 채 짓는 문제로 여기까지 갈 일인가 싶을 수 있는데, 이들 입장에서는 생계가 걸린 일이다.

회사가 갑자기 없어지거나 삶의 터전이 흔들린다고 하면 반응이 격해지기 마련이다. 과천 경마장 이전을 둘러싼 노동자들 반발이 유독 거센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과천시의 반발과는 결이 좀 다른, 경마업계 당사자들 얘기를 따로 정리해봤다.

“행정폭거”라 부르는 이유

정부가 올해 1월 29일 과천 경마장 이전 계획을 발표하자, 마사회노조를 비롯한 노동자들은 즉각 “일방적 행정폭거”로 규정했다.

박문근 한국마사회노동조합위원장은 신임 회장 취임 당일 이를 막아서며 “말 산업 사망 선고와 다름없는 이번 주택 공급 대책은 철회되어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경마유관단체도 성명을 통해 경마산업 종사자들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라고 규정했다.

삭발까지 간 이유

2월 25일, 마사회노조·마필관리사노조·마사회경마직노조·마사회전임직노조·공공산업희망노조 시설관리지부 위원장 다섯 명이 한자리에 모여 결의대회를 열었다.

“경마장 졸속이전을 저지해 경마산업과 우리의 생존권을 끝까지 사수할 것”이라고 밝힌 직후, 다섯 명 모두 삭발했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한국노총 산하 산별연맹 27곳 중 21곳이 함께했다고 하니, 개별 사업장 문제를 넘어 노동계 전체가 연대하는 모양새로 번진 셈이다.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전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건 ‘말’이라는 존재다. 박병철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노동조합 사무처장은 이 부분을 특히 강조했다.

말은 환경 변화에 민감한 동물이라, 흔들리는 깃발이나 낯선 현수막 하나에도 놀라 기승자를 낙마시키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경마장을 옮기면 말들이 새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마필관리사들이 무수한 산재 위험을 감내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대목은 단순히 “이사 가기 싫다”는 차원이 아니라 실제 노동안전 문제로 봐야 할 것 같다.

“5년 내 이전은 정부의 엄포다”

이찬웅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노조 위원장이 내놓은 비교가 인상적이다. 렛츠런파크 영천은 부지 선정부터 개장까지 17년이 걸렸는데, 그 두 배 규모인 서울경마공원을 5년 안에 옮기라는 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다.

대량의 경주마를 옮기고 마방·훈련시설 같은 유관 시설을 함께 이전하면서, 예민한 말들이 탈 없이 경주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은 작업이라는 얘기다. 마사회 역시 7월 말 “정부의 전액 재정지원이 없으면 이전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최소 17년 이상, 조 단위 자금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걸려있나

이찬웅 위원장에 따르면 마사회 소속 외에도 마필관리사, 마주, 조교사와 기수, 수의사, 장제사, 유관 기업까지 합쳐 관련 인원이 1,000명을 훌쩍 넘는다.

경마유관단체 성명에서는 더 넓게 잡아 2만 4천 명의 경마 종사자가 생존권을 위협받는다는 수치도 나왔는데, 이건 업계 단체가 주장하는 수치라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업계가 체감하는 파급 범위가 그만큼 크다” 정도로 이해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지금은 어디까지 왔나

8월 말 기준으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마사회노조와 자회사 직원, 마필관리사노조 소속 400여 명이 과천 마사회 본관에서 피켓 시위를 벌였고, 마주·조교사·마필관리사·기수·생산자로 구성된 별도의 ‘경마산업 비상대책위원회’도 국회 앞에서 따로 집회를 열었다.

마사회는 여전히 “정부의 재정지원 확약이 먼저”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서, 정부와 마사회 사이 입장 차부터 좁혀지지 않은 채 노동자들의 반발만 계속 누적되는 모양새다.

정리하면

경마업계 종사자들의 반발은 단순한 일자리 불안이 아니라, 절차(일방적 통보) · 노동안전(말 이전 과정의 산재 위험) · 물리적 현실성(5년 내 이전 가능한가) · 규모(1,000명 이상 직접 관련) 네 갈래로 얽혀 있다. 그래서 시민단체 집회와는 별개로 노조 차원의 강도 높은 집단행동(삭발, 출근 저지, 지속적 피켓 시위)이 계속되고 있다.

오늘 바로 할 일 한 가지: 뉴스 요약만 보고 넘어가지 말고, ‘경마노동자비상대책위원회’ 관련 기자회견 영상이나 성명 원문을 하나 찾아 직접 읽어보자. 당사자들이 실제로 어떤 표현을 쓰는지 보면 사안의 온도가 훨씬 잘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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